Lavi_ATM
1년 장기 드림합작 - 여름 - 본문
1년 장기 합작 - 여름
라비X유하
영국의 날씨는 비가 오지 않는 날을 찾기 힘들 정도로 언제나 비와 먹구름이 하늘을 차지하고 있었다. 오늘도 비가 내리는 풍경에 유하는 자연스레 창틀에 앉아 밖을 바라보았다. 라비가 사라진지 1년하고도 몇개월, 벚꽃나무 아래에서 봤던 사람은 라비가 아니었음을 유하는 겨우 깨달았었다. 정확히는 사람도 뭣도 아닌 스스로의 환상이었다는 걸 인정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만큼 간절하고, 원했던 것이니까.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리나리의 목소리에 눈을 깜박이자 한순간 사라진 인영을 어찌 오래 잡고 있었는지. 놓지 못할 것을 알지만 만약 싸우는 도중이었다면 분명 죽었을 것이라고 유하는 생각했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인력이 부족한 이 시기에 유하는 포상휴가라는 명목으로 3일 간의 휴가를 받게 된 것이다. 벚꽃잎이 흩날리던 그 날, 급하게 걸음을 옮기며 교단에 도착할 때까지 유하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는 것을 리나리는 기억하고 있었다. 다른 임무를 곧장 가겠다는 유하를 말려 방에 데려다주고는 리나리는 자신의 오빠이자 실장인 코무이에게 이야기를 꺼내러 갔었다.
' 애초에 무리하고 있었고, 유하는 절대 먼저 말하지 않잖아. 교단 사람들 대부분 그렇지만 알렌보다 더. 마치 알아주기조차 거부할 정도로 말야. '
평소라면 다녀왔어, 라는 말로 시작했을 대화가 아닌 제 동료의 이야기를 꺼내는 동생의 모습에 코무이 또한 가벼운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확실히 유하는 그랬다. 알렌도, 칸다도 자신의 아픔이나 고통을, 하다못해 작은 고민거리라도 얘기하는 법이 없었다. 그럼에도 가끔씩 보이는 지친 모습에 간혹 이야기를 권한다거나 일부러 소란스럽게 해줄 때도 있었다. 곁에 있다고 알려주는 듯한 일종의 표현이었다. 그렇게 지내다보면 편해진 표정을 짓기도 하고, 걱정하지 말라는 듯 신호를 보내주기도 하였다. 그럼에도 모르거나 놓치는 모습이 많았는데, 유하는 그런 것조차 없었다. 힘들다는 티도 내지 않았으며 나아졌는지 아직 괴로운지도 드러나지 않았다. 거기다 아주 조금 선을 넘기라도 하면 금방 벽을 세워버리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랬던 그녀가 라비로 인해 밝아져 간혹 티를 내기도 해 내심 안심하고 있었는데, 라비가 사라졌다는 것을 알려주듯 유하는 마치 모두하고 처음 만난 이처럼 되어버린 것이었다. 동생으로 인해 들어왔어도 지금은 엑소시스트를 보호하고자 해 힘쓰고 있던 자신인데. 그러니 그녀도 지치지 않게 해주어야 한다고, 그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한 코무이는 제 동생의 의견을 들어주었던 것이다.
" 받기 싫어도 받아야 해. 쉬는 것도 임무를 위한 것, 말한 적 있었지? "
" ...네에. "
" 딱 3일이야. 그 뒤로는 더 한다고 해도 말리지 않을게. 이건 실장의 입장에서 내리는 명령이고, ...같은 홈에서 지내는 동료로서의 부탁이야. "
하지만 유하의 입장에서는 그렇게 편한 것은 아니었다. 1분 1초가 아까웠다. 혹여 대화하는 이 와중에도 누군가 죽을까 걱정되는데 하물며 자신만 받는 휴가라니 민폐를 끼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아무도 민폐라고 하지 않겠지만. 결국 자신이 약한 모습을 보여 받게 된 휴식이 아니던가. 라비의 모습에 사로잡혀 이런 일이 생기다니, 어느 때보다 자책하기 쉬웠던 것이다. 정말 라비를 사랑하는구나 싶었지만, 한편으로는 그깟 사랑이 무엇이라고 목숨보다 중요하게 여기는지 싶었다. 하여튼 유하는 3일 간의 휴식을 얻게 된 것이다. 창 밖의 비는 여전히 내렸다.
무얼 하면 좋지.
*
첫번째 날에는 자는 것도, 누워있는 것도 어색해 혼자 훈련을 하려다 리버 반장님께 잡혔다. 잡혔다는 표현이 어색하지만 정말 말썽을 피운 실장님을 잡아가듯 훈련장에서 데리고 나와 유하는 속으로 잡혔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잔소리에 유하는 할 수 있는 대답은 온통 핑계 뿐이었다.
" 실장님이 쉬라고 하지 않았어? "
" ...훈련 정도는.. 일이 아니니까요... "
" 몸을 쉬라는 의미인 걸 모르지 않잖아.. "
" 익숙하지 않아서.. 쉬는 것 자체가... "
이 아이는 지금 본인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아는 걸까, 리버는 생각했다. 쉬는 것조차 어색하다니, 마치 살면서 쉬어본 적 없는 이처럼 말하는 모습에 걱정을 넘어 동정마저 가져왔다. 지금이야 어린 나이가 아니었지만, 어렸을 때부터 반복된 생활에 휴식이라는 단어가 어색한 사람이라는 것은 생각보다 큰 문제였다. 그걸 자각하지 못하는 사람일 수록 더더욱, 얼마 가지 않아 쉬지 못해 무너질 것이라는 걸 리버는 잘 알았다. 결국 유하가 방에 들어가는 모습까지 보고나서야 리버는 제자리로 돌아갔다. 확실히 지금 상황이 좋지 않다고 생각할 수 밖에 없었다.
둘째날은 어땠더라, 첫날은 결국 잠으로 보냈다. 자다깨도 다시 잠들고 자다가 깨도 다시 잠들고, 제 방에는 햇빛이 들어오는 구조였지만 밤에 깨고 새벽에 깨었던 것인지 영 시간을 구분할 수 없었다. 그렇게 잠으로 하루를 전부 보낸 줄 알았는데, 뻐근함에 밖을 나가면 어쩐지 다들 방으로 다시 돌려보내는 것이었다. 이런 말은 어색하지만, 어쩌면 배려해주는 걸까 싶었다. 유하에게 있어서는 낯선 상황이었다. 라비를 제외하고 누군가에게 배려 받기는 커녕 관계조차 맺지 않았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분명 라비는 엑소시스트가 된 후에 자신이 북맨의 입장에서 봐야 할 상황과 동료의 입장에서 봐야 하는 상황을 구분하지 못한다고 했었다. 유하는 솔직히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했지만, 만약 동료들이라고 해도 라비의 발목을 잡는다면 자신이 나설 생각이었다. 유하는 그들을 동료라 생각한 적이 없었다. 어찌됐든 검은교단이라는 장소는 제게 있어 끔찍했을 뿐이었다. 라비가 있어 주변이 보이고, 주변을 보자 그들이 있었다. 단지 그 뿐이었다. 라비는 유하의 세계이고,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니 특별한 것이 당연했다. 유하의 세계는 라비가 있음에도 넓어지지 못해서, 제 동료를 외면했다. 자신을 걱정하는 것도, 자신이 걱정하는 것도 라비만으로 충분하다고 여겼다. 둘째날은 파인더 중에 한 사람이 자신에게 산책을 권유했다. 파인더 중에서도 밝은 성격에 모두와 친한 사람이었다. 누가봐도 유하가 혼자인 지금이 친해질 기회라고 여기며, 다가온 것이 눈에 보였지만 유하는 전혀 모른 채 오로지 그가 묻는 말에만 답하고, 자신이 먼저 입을 열지 않았다. 자신은 굳이 입을 열지 않았는데, 전혀 개의치 않은 파인더의 모습에 오히려 놀란 것은 유하 쪽이었다. 그 후에도 파인더와 교단 안을 걸으며, 많은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고, 아는 사람이면 잠깐 서서 대화를 하고, 그러다 식사를 같이 하게 되고, 몇년간의 교단 생활에서도 겪어본 적 없는 일이었다. 유하는 당황스러우면서도 혼자 방으로 돌아가게 되었을 떄, 이미 저물어가는 해를 보며 시간이 이렇게 빠르게 흘러가는 것이었나 싶어졌다. 셋째날마저도 그랬다. 별 다른 것은 없었다. 리버 반장님과 코무이 실장님의 눈을 피해 다른 동료들과 가벼운 훈련을 했고, 같이 식사를 하고, 산책을 한 다음 다시 방으로 돌아갔다. 정말 단 3일 간 있었던 일이었다.
하지만 그 3일 간의 시간은 유하에게 있어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다. 첫날의 상냥함, 둘째날의 동료애, 셋째날의 웃음. 아주 사소한 것들이었다. 그럼에도 변할 수 있던 건 그들의 정 덕분이었음을 유하는 알 수 밖에 없었다. 길게 느껴지던 3일 간의 휴가가 끝나고, 유하는 다시 짐가방을 꾸렸다. 다음 임무는 프랑스로 익숙한 나라였지만 또다른 마을로 향하게 된 것이다. 임무를 나가는 유하의 짐은 언제나 가벼웠다. 여벌의 옷, 돈과 수첩 하나, 마지막으로 라비가 주었던 악세사리 하나. 가벼운 발걸음으로 방을 나서자 그 날따라 유독 밝은 빛이 제 방을 비추었다고 생각했다.
제 곁의 동료가 보인다. 유하는 이 상황마저 라비가 준 것이라 생각했지만, 제 세계가 넓어진 것이 느껴진다. 여전히 영국의 날씨는 우중충 해 창문을 때리는 빗소리만이 들렸다. 또다시 계절의 반이 지나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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